우리나라 최고의 자작나무 군락지
숲속의 귀족 또는 숲속의 여왕으로 불리는 자작나무는 여느 나무들과 달리 귀인의 살결 같은 새하얀 수피를 지니고 있다. 거기에 푸른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곧게 솟구친 모습에선 꼿꼿한 기개까지 느껴진다. 특히 만물이 헐벗은 겨울 숲에서 빛나는 새하얀 살결은 처연하지만 더욱 아름답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작나무 숲은 영화 < 닥터 지바고 > 에서 연인을 태운 수레가 달릴 때 끝도 없이 펼쳐졌던 새하얀 숲으로 깊이 각인돼 있다. 또 영화 < 러브 오브 시베리아 > 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 뒤로 끝없이 펼쳐지던 그 숲, 그리고 계절은 다르지만 만화영화 < 빨간머리 앤 > 에서 주인공이 소꿉놀이하며 놀던 그 숲의 이미지로 더 친숙하다.
북국에선 신령스런 나무로 생각하는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북국의 식물이다. 북국에 사는 사람들은 자작나무를 신령스럽게 생각했다. 슬라브족은 자작나무를 신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준 선물로 여겼다. 러시아는 국화(國花)는 없어도 나라의 나무, 즉 국목(國木)은 정했는데 바로 자작나무다. 동아시아 사냥꾼은 자작나무를 꺾어 움막을 만들었고, 여진족은 자작나무 숲에 인간의 영혼이 머문다는 전설을 믿었다. 북한 지방에선 자작나무 껍질로 지붕을 얹었고, 염습할 때 주검을 감싸기도 했다. 자작나무는 껍질에 기름 성분이 있어 불이 잘 붙는다. 그래서 자작나무로 불을 밝히기도 했다.
자작나무 껍질은 종이의 대용이기도 했다. 인도에선 자작나무 껍질에 불경을 써서 보관했다. 우리나라 경주 천마총의 말안장 장식에 그린 천마도의 재료도 자작나무 껍질이다. 새하얀 껍질에 사랑을 고백하는 글을 써 편지를 보내면 사랑을 얻는다는 낭만적인 속설은 청춘남녀의 귀를 솔깃하게 할 것이다.
자작나무는 우리나라에선 중부 이북 산간 지역에서 자란다. 특히 개마고원 일대엔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북한에서는 자작나무를 '봇나무'라고 부르고, 껍질을 '봇'이라 한다. 우리가 부르는 자작나무란 이름은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는 데서 유래했다. 한자로는 백화수(白樺樹)라고 한다.
우리나라 제일의 자작나무 조림지
자작나무는 군락을 이룰 때 더 아름답다. 자작나무 자생지가 드문 남한에도 자작나무 군락지가 있긴 하다. 태백, 횡성, 홍천, 인제 등 강원도 산간 지방엔 자작나무가 드문드문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거의 인공림이다. 규모도 작은 편이다. 이 중에서 인제군 남면 수산리의 응봉산(매봉, 800m) 기슭에 있는 자작나무숲은 우리나라 최대 조림지로 알려져 있다. 600㏊(181만5000평)에 무려 90만그루나 된다고 한다.
동해펄프(현 무림P & P)는 1984년 강원도 도유지 600㏊를 매입해 1987년부터 산기슭의 나무를 베어내고 자작나무숲으로 조림하기 시작했다. 고급 펄프원료인 자작나무는 자라는 속도도 빨라서 경제성을 갖췄고, 추운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인제 수산리의 기후에 맞았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초기에 심은 자작나무는 밑동 지름 20cm, 키는 15m까지 성장했다.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숲으로 인도하는 안내판은 아직 잘 갖춰져 있지 않다. 인적 드문 겨울엔 무작정 찾아갔다간 헤맬 수도 있다. 일단 이정표가 잘 돼 있는 '자작나무펜션 & 야영장'을 목적지로 삼는다. 구불구불 이어지던 마을길은 '자작나무펜션 & 야영장'을 지나 별장 같은 마지막 민가 앞에서 끝이다. 임도로 이어지는 길은 승용차가 계속 갈 수 있을 정도로 넓지만 겨울엔 길이 얼어붙어 아주 위험하다.
별장 같은 하얀 집 입구의 빈터에 주차하고 임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른다. 이렇게 200m를 걸으면 '임도'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 여기서 오른쪽 길로 1.5km 걸으면 자작나무 숲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가 나온다. 계속 걸으면 11km의 순환 임도다. 걸어서 4시간이 넘게 걸린다. 보행용 아이젠도 필요하다. 임도 표석 갈림길에서 왼쪽은 임도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6km의 이 길은 되짚어 내려와야 한다. 자작나무숲에 욕심이 있다면 오른쪽 임도를 갔다 오는 게 낫다.
또 '자작나무펜션 & 야영장' 못 미쳐 150m 지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150m 떨어진 작은 개울 옆의 빈 농가 앞에 차를 세우고 왼쪽 농로를 걸으면 된다. 이쪽 자작나무숲은 나무도 굵고 가까이서 자작나무를 만날 수 있어 산책하는 맛이 더 좋다.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 숲은 최근에 제법 알려져 한겨울에도 찾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겨울 숲이란 게 대부분 그렇지만 수산리 자작나무숲도 영화에서 보아온 이미지는 아니다. 저절로 감탄사가 터질 정도로 화려하지도 않다. 만약 영화에서처럼 눈을 놀라게 할 만한 그런 엄청난 자작나무숲을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수도 있다. 90만그루의 자작나무라 해도 가파른 산속 여기저기에 조림한 탓에 한눈에 다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국의 설원을 수놓은 그 풍광엔 비록 못 미치나 겨울 자작나무 숲의 정취를 누리기엔 괜찮다.
여행수첩
●교통
서울양양고속도로→동홍천 나들목→44번 국도(인제 방면)→신남 삼거리(좌회전)→46번 국도(양구 방면)→1.5km→수산리 입구 삼거리(좌회전)→6.5km→수산리 버스 정류장 삼거리(좌회전)→2.5km→창막골 삼거리. < 수도권 기준 2시간30분 소요 >
여기서 좌회전 150m 직진하면 '자작나무펜션 & 야영장'이 나오고, 600m 더 가면 새하얀 마지막 민가. 이쯤에서 주차를 하고 200m 걸어 오르면 '임도' 표지석 갈림길. 오른쪽으로 1.5km 가면 자작나무숲 조망지, 왼쪽으로 가면 자작나무 숲을 지나 응봉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또 '자작나무펜션 & 야영장' 150m 전의 창막골 삼거리에서 오른쪽 농로를 따라 150m 가면 왼쪽으로 자작나무숲 산책길이 보인다.
인제 수산리는 산 깊은 오지마을이라 겨울에 자작나무를 찾아가는 길은 수월하진 않다. 사륜구동이 아닌 일반 승용차라면 스노체인이 꼭 필요하다.
●숙박
수산리 자작나무숲 입구에 자작나무펜션 & 야영장(010-7130-9537, cafe.daum.net/jajakcamp)이 있다. 야영장은 1박 2만5000원(전기 사용료 포함), 2박부터는 1만5000원. 수산리 자작나무숲 근처엔 식당은 마땅한 곳이 없다. 남면 소재지에 청국장을 차리는 식당이 여럿 있다.
●별미
인제군 남면 소재지에서 승용차로 5~10분 거리의 소양호 신남선착장은 우리나라 최대 빙어낚시터. 빙어축제가 1월28일부터 2월6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구제역 때문에 취소됐다. 그렇지만 선착장 입구의 소양호식당(033-461-6352), 강촌식당(033-461-7919) 등에서 빙어회돚빙어무침(1만5000원)이나 빙어튀김(1만원) 등을 맛볼 수 있다.
●참조
인제군청 대표전화 1588-2201